조선일보(2013.7.18) 축구선수 구자철(본교 2007년 졸업) 관련 기사
[조정훈의 태평로] 볼수록 기분 좋은 청년, 구자철
조정훈 조선일보 스포츠부장
서울 보인고등학교 김석한 이사장은 축구 마니아다. 보인상고 졸업생인 그는 모교 축구부 후원회장을 맡았다가 2004년에 학교를 인수했다. 2007년에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자율형사립고로 바꿨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업가인 그가 그동안 학교를 위해 내놓은 돈만 2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게 내 교육 목표"라며 "그건 축구 선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축구부 선수들에게 수준별 수업뿐만 아니라 영어 회화, 한문, 독서 등 별도 교육을 받도록 한 것도 이런 취지라고 했다.
그는 요즘 "우리 학교 출신인 구자철은 볼수록 기분 좋은 친구"라며 후배 자랑이 한창이다. 런던올림픽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한 구자철은 지난달 22일 결혼했다. 구자철은 방송 출연과 인터뷰 등 바쁜 일정 속에서도 모교를 찾아가 선생님들께 인사드렸다. 김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 중에 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고 결혼 인사를 드리는 친구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구자철의 결혼식 주례는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경기위원장이 맡았다.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시절 그를 뽑아준 프로 무대의 스승이다. "더 명망(名望) 있는 분에게 부탁드리는 게 좋겠다"며 고사하던 정 위원장도 구자철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을 돌렸다. 초등학교 때 부모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구자철은 아버지와 고모의 뒷바라지 속에 성장했다. 2011년 분데스리가 진출로 '목돈'을 만지게 된 구자철은 제일 먼저 아버지와 고모에게 집 한 채씩을 사드렸다고 한다.
올 들어 국내 스포츠에선 인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은퇴한 야구 선수 박찬호는 지난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가 끝난 뒤 "인성 교육을 통해 태극 마크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당시 대표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질책한 것이다. 지난 5월에는 프로야구 LG와 롯데의 경기가 끝난 뒤 LG 임찬규가 MVP로 뽑힌 선수를 인터뷰하던 여자 아나운서에게 물세례를 퍼부으면서 인성 논란이 일었다. 최근에는 축구 선수 기성용이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겨냥해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 실수는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 "우릴 무시하는 거냐"고 몽니를 부리는 건 볼썽사납다. 인터뷰 도중 물벼락 맞은 여자 아나운서는 '쓰레기통에 담겼던 물' 때문에 결막염(結膜炎)까지 걸렸지만 연관된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입을 다물었다. 기성용의 페이스북 내용을 공개한 칼럼니스트는 1년 전에 자료를 입수해 칼럼을 썼다가 폐기 처분한 적이 있다고 했다.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을 앞두고 대표팀 분위기를 흐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새로 월드컵 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홍명보 감독은 기성용에게 "부족한 내면(內面) 세계의 공간을 넓혀가라"고 일침을 놓았다. 17일 파주NFC에 소집된 대표팀 선수들은 홍 감독의 지시에 따라 전원이 정장(正裝)에 넥타이 차림으로 모였다. 대한항공 스포츠단은 지난주 소속 선수 80여명을 모아놓고 서양 식사 예절 등 국제 매너 교육을 했다. 반갑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위에서 이끌고 도와주는 분위기만큼이나 스포츠 선수들 스스로 인성 함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기장 안팎에서 인정받는 스타가 늘어난다면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視角)도 분명 달라질 것이다.
- 조선일보 2013. 7. 18일자 -
- 조정훈의_태평로(구자철).hwp (15.5KB)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