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인고 축구 선수와 해병대 가다.
사진설명-서울 보인고 축구선수들이 지난 4일 경북 포항시 월포해수욕장에서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오리걸음을 걷는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2시. 선수들이 백사장에 웃통을 벗고 집합한다. 80kg짜리 고무보트를 10명이 머리 위로 치켜든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모래밭을 뛴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훈련교관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100m 왕복달리기, 50m 달리기 시합을 시킨다. 선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호흡이 맞지 않는 팀은 선수들끼리 뒤엉켜 넘어진다. 훈련교관은 "고통은 순간이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승리는 없다"고 다그친다.
휴식은 잠깐. 한 명을 보트 위에 태우고 이동하는 ''구명훈련''이 이어진다. 무게감이 확 달라지면서, 나머지 9명의 선수들이 끙끙거린다. 게임 도중 한 명이 퇴장당한 것과 같은 상황. 위기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침착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배운다.
선수들은 3일 입소하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밤 10시 갑자기 돌멩이 투성이인 운동장에 소집됐다. 찬 바람 속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30여분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옆으로 굴러를 반복하는 얼차려를 받았다. 정신교육이었다.
4일에는 오전부터 5km 구보, 오리걸음 등으로 몸을 달궜다. 오후에는 백사장을 뛰고 구르고 달렸다. 물론 고무보트를 든 채 움직였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2학년 이강산 군은 "쉬는 시간 없이 하루종일 훈련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한숨을 내쉰다.
''보트 기마전''으로 잠시 긴장을 푼다. 한 팀이 반칙으로 꼴찌가 되자, 보트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벌을 받는다. 당연하다. 페어플레이를 해야지!
그러나 지금까지는 ''연습''에 불과했다. 오후 4시, 드디어 고무보트를 탄다. 목표 지점까지는 약 300m. 선수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노를 젓는다. 평소 다리만 사용하던 선수들이어서 노를 젓는 게 쉽지 않다. 근육이 금방 뻣뻣해진다.
파도에 옷과 발, 머리까지 젖어 감각이 없다. 손은 벌게져서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다. 영상 8도의 포근한 날씨가 무색하다. 그래도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고 ''악으로 깡으로'' 노를 젓는다. 파도에 보트가 기우뚱할 때마다 "좌현, 우현"을 외치며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10명의 선수들 모두 목이 쉬었다. "어깨가 아프다"는 하소연이 터진다. 그러자 다른 선수가 "1등 해야 한다"고 외치고, "서울까지도 가겠다"는 격려도 쏟아진다.
30여분 만에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수심 15m의 푸른 바다가 풀밭처럼 푹신하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2학년 이정헌 군은 "힘들다. 하지만 다 같이, 뭉쳐서 훈련하는 게 너무 좋다. 단결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학년과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훈련함으로써 소속감을 키우고 정신력을 강화하는 좋은 기회"라던 문선철 감독의 말이 실감난다. 보인고는 지난해 전국대회에서 준우승과 3위를 한 차례씩 차지했다. 올해는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정신력 강화 차원에서 지옥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더 엄혹한 시련이 기다린다. 원핑덤핑(보트 뒤집기와 바로 세우기)과 저체온 훈련이다.
차가운 바닷물속에 풍덩 빠졌다 나온 선수들은 추위에 온몸을 덜덜 떤다. 수없이 해왔던 팔 벌려 뛰기도 제대로 안된다. 펭귄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악, 악..." 고함칠 뿐이다. 손이 얼어 구명조끼의 버클을 못 여는 바람에 기자가 풀어주기까지 했다.
선수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체온과 동료애를 나눈다. 1학년 입학 예정인 U-13세 대표 출신 박현진 군은 "부모님 생각이 난다"며 입술을 깨문다.
오후 5시 30분. 파김치가 된 몸으로 고무보트를 들고 숙소로 이동한다. 선수들은 숙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머니 품보다 반갑다.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이 젊은 얼굴에 가득하다.
보인고의 해병대 극기훈련은 고교 축구팀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문 감독은 "입소 과정, 훈련 성과를 묻는 전화를 하루 10통 이상 받았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5일에는 고무보트를 이고 20km 산악훈련을 소화했다.